Yuri Rob 2014. 10. 3. 22:31

햇살


  딩동. 딩동딩동. 유리는 한 손에 커다란 케이크와 비닐봉투를 든 채로 벨을 눌렀다. 집에 없나? 유리는 제러마이어에게 연락을 해보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려다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나 핸드폰 버렸지, 참. 유리는 다시 한 번 벨을 누르기 위해 손을 초인종 위에 올려두었다.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 건 그 때였다.


  “유리.”

  “제리. 집에 있었네요?”

  “왜 연락이 안……. 아니, 그건 뭐예요?”


  대답 대신 유리는 그저 웃었다. 익숙하게 제러마이어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 톰이 그를 반기듯 야옹, 하고 울었다. 안녕. 유리는 톰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곤 부엌으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 케이크 상자를 올려두자 제러마이어가 그의 뒤를 쫓아와 다시금 물었다. 웬 케이크예요? 유리는 익숙하게 케이크 상자를 열어 케이크를 꺼냈다.


  “부장됐다면서요.”


  제러마이어의 표정이 잠시 굳었던 것을 유리는 놓치지 않았다. 유리의 입에서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둘은 암묵적으로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고, 그렇기에 제러마이어는 갑작스런 유리의 말에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유리는 그런 그를 못 본 척 했다.


  “진급 축하 기념으로.”


  싫어요? 싫으면 나 혼자 먹고. 유리는 의자에 먼저 앉아 제러마이어를 올려다보았다. 비닐봉투에서 맥주도 꺼내어 앞에 두고 유리는 제러마이어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 제러마이어는 천천히 유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축하해요.”

  “……고마워요.”


  제러마이어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유리는 웃으며 포크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예요. 생크림이 듬뿍 올려진 하얀 케이크는 참으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유리는 포크로 케이크를 떠서 입에 넣었다. 달짝지근한 크림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유리.”

  “응? 안 먹어요?”

  “연락은 왜 안 됐어요?”


  그의 말에 유리는 이제는 고철덩어리가 된 제 핸드폰을 떠올렸다. 발로 밟아서, 쓰레기통에 버렸지. 이로써 일로 엮인 다른 이들과의 연은 다 끊긴 셈이었다. 그의 손에 남은 건 이제 눈앞에 있는 남자뿐이었다.


  “나 지알레 그만뒀어요.”


  핸드폰을 없앤 건 그 때문이었다. 무너져가는 조직이라 해도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마피아를 그만두었고, 그로 인한 보복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중이었다. 아마 그건 제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손 터는 게 낫지 않겠어요?


  유리는 제 위의 조직원에게 돈을 찔러주며 그렇게 속삭였다. 요샌 돈도 벌기 힘들죠? 그건 유리가 지금까지 마피아 일을 하며 모아둔 돈 전부였다.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몰라 모아둔 것이 이럴 때 쓸모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지알레를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제러마이어가 유리의 앞에 들이민 것이었다. 남자는 불안한 표정으로 유리의 돈을 받았다. 유리는 그렇게 지알레의 조직원 명단에서 이름을 지웠다. 물론 다른 조직원들이 그에게 보복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기에 당분간은 CSP인 제러마이어의 뒤에 숨어 지낼 생각이었다. 제러마이어만 허락해준다면.


  “……잘했어요.”


  제러마이어는 손을 뻗어 유리의 손을 붙잡았다. 괜찮냐던가, 왜 그랬냐던가.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유리는 그런 제러마이어가 참 좋았다.


  “이유 안 궁금해요?”

  “궁금해요.”

  “말해줄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유리는 처음을 떠올렸다. 그땐 그저 제스의 뒤를 따르고 싶을 뿐이었다. 그녀가 무얼 위해 지알레에 들어갔는지, 어째서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그녀의 뒤를 쫓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유리의 등에 새겨진 날개 또한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것 또한 제시카가 그에게 남긴 유품이었다.


  유리가 지알레에 몸 담은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제시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알레의 이름을 업은 그는 뒷골목에서 살기 조금 편해졌을 뿐이었다. 더 이상 약에 취해도 제시카는 보이지 않았다. 유리는 그곳에 머무르며 목숨을 연명해갔다.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위험했고, 최소한의 것만을 누리며 살아갔다. 그에게는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말이 정말로 잘 어울렸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유리에게 사치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언제였더라. 유리는 저와 함께 일하던 남자가 다른 조직원의 총에 맞아 즉사하는 것을 보며 공포감을 느꼈다. 지알레는 더 이상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아니, 그 이름은 유리를 더더욱 위험하게 했다. 그 이름을 안고 살아가는 한 그의 유일한 사람인 제러마이어조차도 유리를 보호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버리기로 했다. 제시카의 그늘은 더 이상 그를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한 건 유리의 착각이었던 걸지도 몰랐다. 제시카 또한 잘못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고, 유리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이제는 죽어버린 이에게 답을 요구하는 것도 참 미련한 짓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유리를 바꾸어놓았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의 삶을 살 때가 되었다고, 유리는 마지막으로 본 제시카의 표정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제시카는 분명 유리와 함께 사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또한 미래를 꿈꾸어도 되는 게 아닐까.


  “같이 살고 싶어서요.”


  제리랑. 유리는 힘겹게 웃었다. 제 손을 감싸고 있는 제러마이어의 손이 너무나도 따스해서, 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쥐었었던 제스의 손은 차가웠었는데. 이제는 그녀의 손을 놓아줄 때였다.


  “나 이제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제리 말고는 없어요.”

  “…….”

  “그러니까, 같이 있어줘요.”


  유리는 제러마이어의 손을 끌어다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묵묵히 그의 말을 듣던 제러마이어는 유리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대답보다도 더 마음을 울린 건 마주 닿아오는 따뜻한 체온이었다. 유리는 눈을 감았다. 구름이 걷힌 그 너머에는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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