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 Rob 2014. 10. 3. 22:29

미션 4 - 우스운 이야기


  “CSP가…….”


  유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귀를 쫑긋 기울였다. 수금을 마치고, 몇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개중에는 유리보다도 더 높은 이름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유리는 테이블 아래로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아직 밖이예요? 제러마이어로부터의 문자였다.


  [아뇨 집이예요 이제 자려구]


  밖이라고 하면 걱정할 것이 뻔하므로 거짓을 말했다.


  “이번에 뭔가 준비하고 있다던데.”

  “뭔데요?”


  [위험한데 너무 늦게 돌아다니지 마요]


  웃음이 절로 나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유리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우스웠다. 지알레의 이름 아래에 있는 한 유리는 마피아 세력권 안에서는 위험할 일이 드물었다. 제러마이어와 같은 CSP만 없다면 괜찮았다.


  “그 개자식들, 의기양양해져선 마피아를 소탕한다느니 어쩌니…….”

  “그거야 뭐 그놈들이 항상 하던 소리 아닙니까.”


  [조심할게요 피곤할 텐데 얼른 자요]


  그렇다고 제러마이어에게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했다. 유리도 푹 자요, 하는 마지막 문자를 보고 유리는 핸드폰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CSP를 욕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우습게도, 아주 우습게도 그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유리는 잠자코 앉아있어야만 했다.






  유리가 맡은 곳은 마피아들의 주된 수입원이 있는 유흥가였다. CSP놈들, 아주 본때를 보여줘야지. 유리는 제 옆에서 총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는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시뻘겋게 빛나고 있었다. 경찰한테 동생이 죽었다고 했던가? 아니, 죽은 게 동생이 아니라 애인이었나?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소중한 이를 잃었다며 술을 마시고 경찰청에 쳐들어가겠다는 것을 말린 적이 있었다. 유리는 팔을 뻗어 그의 어깨를 지긋이 눌렀다. 그렇게 흥분해서는 맞출 것도 못 맞추겠어요. 남자는 유리의 말에 진정하려는 듯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 동안 유리는 바깥을 살폈다. 아직 밖에서는 CSP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이 숨은 곳은 창에 썬팅이 짙게 된 어느 창녀의 집 안이었다. 마피아의 세력 아래에 있지만 마피아는 아닌 그녀에게 돈을 쥐어주고 잠시 이곳을 떠나있으라 말했다. 여자는 지알레인 그들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여자의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큰 침대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손님을 받았을까. 얼마나 많은 남자의 밑에서 소리 내어 울었을까. 유리는 그런 여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그녀들은 대부분 유리의 고객이었고, 살기 위해 몸을 팔던 이들은 약을 하기 위해 몸을 팔게 되었다. 유리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저 또한 같은 처지인데, 누굴 동정할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씹새끼들……. 왜 이렇게 안 와?”

  “좀 진정하라니까요.”


  왜 하필이면 이런 남자랑. 유리는 옅게 인상을 찌푸렸다. 성질이 급해선 될 일도 다 망칠 사람이었다. 제 손에 들린 총을 내려다보던 유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곤 손을 뻗어 남자를 툭 쳤다. 오나 봐요. 유리는 숨을 죽였다. 창녀의 집이라곤 해도 주변을 정리해놔서 일반 가정집으로 보일 것이다. CSP는 웬만해서는 일반인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노리기로 했다. 누군가 한 명 미끼가 되어 CSP를 이 골목 안으로 끌고 오면 숨어있던 이들이 나가서 경찰을 치기로 한 것이다.


  탕!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달려왔다. 유리와 남자는 숨을 죽인 채 밖을 내다보았다. 탕! 총소리가 더 들려왔다. 골목에 아무도 없으니 마음 놓고 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익숙한 얼굴이 열심히 달려 그들의 앞을 지나갔고, 그 뒤를 CSP 몇 명이 쫓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유리는 더 쫓아오는 이가 있나 보기 위해 큰길가로 통하는 길목을 바라보았다.


  “씨발.”


  남자가 그렇게 내뱉은 건 그 때였다. 저 새끼, 내가. 씨발. 문이 벌컥 열리고 남자는 총을 들고 뛰쳐나갔다. 유리는 그 뒤로 다른 CSP들이 쫓아오는 것을 보았다. 아, 진짜 미친! 그 중 하나가 열린 문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유리는 더 이상 남자를 신경 쓸 틈이 없어졌다.


  경찰이 제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유리는 총을 집어넣고 칼을 빼어들었다. 그리곤 그가 들어오는 것에 맞추어 칼을 휘둘렀다. 배를 푹 찌르고 들어간 칼날에 남자는 소리를 질렀다. 유리는 황급히 밖으로 튀어나갔다. 골목에 뒤늦게 들어온 CSP들은 미끼를 쫓기보단 주변 집에 숨은 지알레가 없는지 찾는 중이었다. 그 미친 새끼 때문에 다 망했네.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골목은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옆구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하지만 유리는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뛰었다. 그 뒤로도 몇 발이고 총이 쏘아지는 것을 들었으나 다행히 그 중 하나도 명중하지 않았다. 유리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몸을 돌려 CSP의 발치에 총을 몇 발 쏘았다. 그들이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유리는 익숙하게 골목을 달려 다른 곳으로 피했다. 이곳 유흥가는 유리가 훤히 꿰뚫고 있는 곳이었다. 옆구리가 찢어질 듯 아팠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옆구리가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위험하리라는 것을 유리는 잘 알고 있었다.


  조용한 소리와 함께 함께 문이 닫혔다. 낮에는 문을 닫은 술집, 의 주방. 그 뒷문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벽에 기대어 주저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자 붉은 손이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총알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간 상태였다. 상처는 깊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아아. 유리는 숨을 고르며 쥐고 있던 총을 옆에 내려놓았다.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미친 새끼. 죽었겠지, 아님 잡혔거나. 소중한 사람에 이어, 자신의 목숨까지 CSP에게 넘긴 꼴이 되었다. 사랑에 눈이 멀어 동료들까지 사지로 몰아넣었다. 이번 작전에서 빠지라는 말에 괜찮다며, 자기는 잘 해낼 수 있다며 끝까지 우기더니 결국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 지알레는 항상 말했다. 사소한 정에 휩쓸리지 말라고. 유리는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는 걸까 항상 생각했다. 지알레 안에서는 나보다도 조직이 우선이었고, 지금까지 그는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자신 또한 제러마이어가 엮인 일에 냉정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알 수 없었다. 오늘만 해도 총구를 제대로 들이대지 못하고 애꿎은 바닥만 쏘아댄 것은 CSP의 제복을 입은 남자들의 얼굴에 제러마이어의 얼굴이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유리는 피가 묻지 않은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옆구리에서 계속해서 느껴지는 통증에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만일 그렇다면 자신은, 지알레에게 복수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건 정말로 우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에 자꾸 그를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우스웠다. 이번에도 유리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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