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 Rob 2014. 10. 3. 22:25

끈질긴 인연 (with 카일)


  카일 하트레즈는 굉장히 이상한 남자였다. 마약을 팔며, 마피아 일을 하며 별별 사람을 다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카일만큼 이상한 사람은 또 없었다. 평생 산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유리는 제 앞에서 빙글빙글 웃는 카일을 바라보았다.


  “재밌어?”

  “그럼요.”


  유리한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좋은 걸요. 카일은 손에 든 만년필로 유리의 앞에 놓인 책을 가리켰다. 중학교 수업시간에나 쓴다는 교과서였다. 글자라곤 제 이름밖에 쓰지 못하는 유리를 위한 특별 과외였다. 자, 얼른 집중해요. 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책으로 고개를 숙였다.


  카일과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꽤나 오래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장사를 하고 있는 저를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뭐라고 했더라?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왔어요. 유리는 분명히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두 번이나 쥐어준 명함은 버렸지만 기억까지 지워내 버릴 순 없었다.


  ‘궁금해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궁금한 걸 어떻게 참습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그는 그때도 참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전혀 바뀐 게 없었다. 좋은 말로 한결같았고, 나쁜 말로는 골치가 아팠다. 다른 사람 대하듯 하려 해도 어물쩡 넘어가주는 일이 없었다.


  ‘알면 그쪽이 위험해서 그러는 거예요.’

  ‘누가 절 위협하는데요? 지알레?’


  유리의 눈이 잠시 크게 뜨여졌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회사 때려 쳤다니까요. 카일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리.”

  “……어?”

  “딴생각했죠?”

  “응.”


  무슨 생각을 했는데요? 카일의 눈이 유리를 담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에 풋내기 같던 모습이 조금은 위압적으로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봤자 카일일 뿐이지만.


  “칼도 제대로 못 쥐던 게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

  “그게 대체 언제적 일이예요.”

  “몰라.”


  그 날, 카일의 끈질긴 질문공세에 먼저 포기한 것은 유리였다.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우습게도 지알레의 작전 현장에서였다. 상대 조직원 하나도 제대로 처치하지 못하고 쓰러져있는 것을 구해준 것이 유리였다. 유리는 카일의 명함에 적혀있던 번듯한 회사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 회사를 그만두고 한다는 게 마피아라니. 어차피 저와는 먼 세상의 이야기라 부럽진 않았으나 어처구니가 없긴 했다. 넌 마피아가 쉬워 보여? 유리는 시체 아래에 깔려 피범벅이 된 카일에게 성질을 냈다. 하지만 카일은 전혀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니 눈엔 이게 그냥 재밌어 보이고, 장난으로만 보이나본데. 다들 목숨을 걸고 있단 말야.’

  ‘나라고 장난으로 하는 건 아닌데요.’


  익숙하지 않을 뿐이니까. 카일은 시체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옷이 더러워졌네. 그는 등이며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어차피 피로 젖어 엉망이 된 옷이었음에도 그랬다.


  ‘그래서 말인데요.’


  카일은 피로 젖은 셔츠를 펄럭였다. 유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저 입에서 대체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이제는 두렵기까지 했다. 유리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잠자코 그의 말을 기다렸다.


  “유리도 펜 좀 제대로 쥐어요.”


  ……카일의 말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손이 유리의 손을 잡고 모양을 교정해주었다. 유리는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다 고개를 들어 카일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그렇게 쥐면 불편하다니까. 그래도 그렇게 쥐어야 손에 부담이 덜해요. 그의 말에 유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그렇게 글을 오래 쓸 일이 있겠어? 카일은 잠시 생각하다 그의 말에 수긍했다. 하긴 그렇네요. 유리는 다시 입을 열었다. 펜보다는 칼을 쓸 일이 많을걸.


  어찌 보면 끈질긴 인연이었다. 사실 자신보다는 카일 쪽에서 끈질기게 굴었던 것 같지만. 유리는 결국 카일에게 칼을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카일은 유리를 스승님이라 칭하며 잘 따랐다. 조금 이상하긴 했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집중 안 해요?”


  유리는 카일의 말에 알았어, 하고 대답하며 다시 책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방금의 생각을 정정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조금 귀찮긴 했다. 그래도 카일은 유리에게 마피아를 하며 만난 몇 안 되는 소중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유리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펜이 사각대며 종이 위에 삐뚤빼뚤한 글자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