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 Rob 2014. 10. 3. 22:21

미션 3 - Sweets (with 제러마이어)


1.


  유리는 일하러 가는 길에 담배 대신 막대사탕 하나를 샀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초코맛이었다. 사탕만으로도 단데 거기다 초코맛이라니. 제시카가 인상을 찌푸렸던 것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그는 사탕을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유리는 사탕을 쭉쭉 빨며 길을 걸었다. 느긋하게 걸어가면 충분히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만요!”


  퍽. 누군가 유리의 어깨를 밀쳤다. 그는 가방을 들고서 급하게 달려 유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유리는 바닥에 떨어트린 사탕을 바라보았다. 조각나 깨어진 짙은 갈색의 사탕은 반질반질 맛난 빛깔을 띠고 있었지만 그건 그저 환상일 뿐이었다. 아깝네. 유리는 입맛을 다시며 사탕을 걷어차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시 살까 했지만 귀찮기도 했고, 그래서 그는 그냥 일이나 하러 가기로 했다. 무사히 일을 마치면 사탕을 한 봉지 사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2.


  바깥 경호를 맡은 이들끼리 작전 회의가 있었다. 어소시에이트인 유리에게도 참석 명령이 떨어졌다. 그의 옆자리엔 솔져가 된 레드가 있었다. 대단한걸. 그저 들을 뿐인 회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을. 유리에게는 거부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달디단 커피를 마시고 있는 레드를 바라보았다. 몇 년간 어소시에이트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자신과 그녀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유리는 그 자리가 탐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자리가 있는 법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소시에이트라는 이름에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 쓰잘 데 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회의는 끝이 났다. 따로 시간을 내어 모인 것이 무색하도록 간단한 결론이었다. 그냥 맡은 구역을 잘 지키자는 게 무슨 작전이야.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그걸 그 사람들 앞에서 비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리는 필요 없는 분란을 만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차피 일에 큰 의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유리는 어느 구역이에요오?”

  “나는……. 이쪽이네요.”


  유리는 손을 뻗어 지도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레드는 바로 그 옆 구역이라고 했다. 가깝네에. 잘 하면 얼굴도 볼 수 있겠다아. 그렇게 말하는 레드를 보며 웃었다. 그러게요. 하지만 실제 전투에 돌입하면 정신이 없어 서로를 신경 쓰지 못할 거란 걸 유리는 잘 알았다. 레드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은 그랬다. 유리는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였다. 단맛이 훅 입 안으로 밀려들었다. 레드의 것과 같은 향이었다.


  “유리도 단거 좋아해요오?”

  “아주 좋아해요.”


  특별히 음식에 가리는 것은 없었으나 단 것만은 좋아했다. 한참 단 것을 많이 먹고 자랐어야할 시기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이었다. 우습게도 단 것만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마치 담배와도 같은 중독이었다. 아니, 어쩌면 담배보다도 더할지도 몰랐다. 유리는 단 것에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여기 커피는 달긴 한데에, 좀 모자라지 않아요오? 레드의 물음에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것이라면 다 좋았지만 역시 달면 달수록 좋았다.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의 아찔한 단맛. 남자들은 대체로 단 것을 아이의 입맛이라며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마초적인 기질이 강한 마피아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유리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말해본 적이 없었다. 레드가 처음,


  아니, 두 번째인가. 유리는 여기 오는 길에 바닥에 떨어트린 막대사탕을 떠올렸다. 그 또한 아무 말도 없었던 것 같다.


  “역 앞에 커피하우스 알아요오? 거기 카라멜 커피가 제일 맛있어요오.”

  “그래요?”

  “으응,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아. 돌아가는 길에 마시고 갈래요오?”


  그녀가 말하는 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몰랐지만 같이 갈 거라면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좋아요, 하고 답하려는 찰나 누군가 외쳤다. CSP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유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말로 해도 잘 안 들릴 것 같았다. 유리의 대답을 들은 레드는 화사하게 웃었다.


  “잘 다녀와요오. 다치지 말구요오!”

  “레드도요!”


  걱정하지 않아도 레드는 잘 해낼 것이다. 솔져라는 이름이 그녀의 능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거기다 아래에 있는 저 같은 이들이 솔져인 레드를 잘 섬길 테다. 유리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 걱정을 싹 지워냈다. 그래도 레드가 말한 커피는 조금 기대가 됐다.






3.


  유리가 맡은 구역은 클럽의 뒤편이었다. 입구 쪽과는 달리 아직 한가해보였다. 가까운 건물의 옥상 위, 뒷문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던 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유리는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왜 하필. CSP의 제복을 차려입은 그가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시민 유리로 만났을 때는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다. 제러마이어는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차라리 딴 데로 가던가. 유리는 초조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야기가 끝난 모양인지 제러마이어의 앞에 있는 남자가 그 자리를 떴다. 유리는 클럽 쪽으로 걷기 시작하는 제러마이어를 바라보며 결국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도 일이었지만. 아마도 뒷문을 봉쇄할 모양이었다. 도주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됐다.


  빠른 걸음으로 뛰어 내려가자 곧 제러마이어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근데 나, 확실히 이상해 보이겠지. 유리는 제러마이어에게 말을 걸기 전 자신을 돌아보았다. 정장을 입고 마피아가 난동을 부리고 있는 곳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남자라니. 어떻게 생각해도 의심받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제러마이어.”


  그래도 불렀다. 제러마이어의 눈이 뒤를 돌아보곤 크게 뜨여졌다.


  “왜 여기 있어요? 여기 있으면 위험한데……. 아니, 왜 옷이…….”


  제러마이어는 당황한 듯 했다. 그럴 만도 하지. 유리는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속이려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유난히도 저를 많이 살펴주었던 사람이었다. 아마도 길거리에서 직접 만든 악세사리를 파는 걸 보고 힘겹게 사는 청년이라고 생각한 듯 싶었다. 유리는 그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나 지알레니까 나한테 너무 잘해주지 말아요. 경찰한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말하는 순간 잡혀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니, 그냥 몰랐으면 했다. 조용히 그와 멀어지면 해결되는 문제였으나 그러지 않은 것은 제가 이기적이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 없는 관계를 부여잡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유리는 제러마이어의 가슴에 생길 상처를 생각하지 않았다. 마피아인 자신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것을 주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할 얘기가 있는데.”


  유리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일은 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잘 해왔던 일이었다. 지알레가 아니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경찰 하나 때문에 생계 수단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살아가는 것에 미련은 없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말고요.”


  제러마이어도 무언가 알아차린 듯 했다. 위아래로 유리의 모습을 훑던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야. 여기서는 안 돼. 유리가 제러마이어의 손목을 낚아채 끌어당겼다.


  “저리로 가서.”


  제 힘으로 제러마이어가 끌려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다행히도 그는 유리의 말에 납득해준 듯 뒤를 쫓아 따라왔다. 마주 닿은 피부가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유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멀리멀리. 지알레도, CSP도 없는 곳으로.


  제러마이어가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유리는 제러마이어가 그랬듯 그가 다치기를 원치 않았다. 클럽에서 가까운 곳은 지알레의 세력권이었다. 싸우려면 근처에서 싸우도록 해. 지원 나갈 수 있도록. 유리는 제게 명령하던 이의 말을 기억해냈다. 저를 호의로 돌봐주던 이를 상처 입힐 수는 없었다. 아무리 적이라도, 이미 상처를 주고 있음에도 그랬다. 유리는 깨어져 바닥에 뒹굴던 사탕을 떠올렸다. 호텔에서 먹었던 알록달록한 색의 막대사탕도 기억해냈다. 오독오독. 관계가 유리의 입 속에서 깨어져 흩어졌다. 사탕을, 커피를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죄책감마저도 마비시켜버릴 만큼 강한 단맛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먹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윽고 작은 골목길에 다다랐을 때, 유리는 제러마이어의 팔목을 놓고 주위를 살폈다. 그는 이제 말해보라는 듯 유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목 안이 쩍쩍 말라붙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요.”


  가장 먼저 튀어나간 것은 우습게도 사과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