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 Rob 2014. 10. 3. 22:22

사랑스러운 바다 (with 로즈)


  여름이지만 바닷바람은 선선했다. 유리는 담배를 피우며 어둠속에 파묻힌 바다를 바라보았다. 흰 달빛이 물결을 비추었다. 흰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유리가 없어도 파티는 계속되고 있었다. 사실 그런 건 상관없었다. 아까까지 적당히 다른 이들과 함께 놀다 빠져나온 찰나였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혼자 있는 것보다 여럿이 있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어서 유리는 적당히 바깥에 있다 들어가기로 했다.


  세 개, 아니 네 개째던가. 몇 개비 째의 담배를 물어 불을 붙였을 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유리는 손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바다를 감싼 어둠과도 같은 검은 머리의, 매력적인 눈매를 가진 여자가 유리에게서 불을 가져갔다. 같은 지알레끼리도 모르는 사람은 많았다. 그렇기에 유리는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나와 있어요?”


  여자의 물음에 잠시 고민을 했다. 혼자가 편해서요. 정답이었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유리는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담배 피우려면 나가서 피우라길래.”

  “흠…. 마피아들 주제에 더럽게 까탈스럽네요.”


  그녀의 이름은 로즈였다. 유리도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로즈는 유리의 이름이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유리는 여자의 이름이 더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꽃집에서 지나치며 보았던 여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꽃을 생각했다. 색은 달랐지만 그녀도 아름다운 장미였다. 하지만 유리는 그저 웃었다. 제가 그런 말을 입에 담아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스럽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인 건지.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로즈의 이름이 사랑스럽다고 느낀 것도 장미가 주는 통상적인 의미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느낀 거짓은 아니었으나 로즈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런 것을 훤히 꿰뚫어볼 것만 같았다.


  둘은 가만히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피어오르는 담배연기가 짙었다.


  “같이 산책할래요?”


  로즈는 바닥에 담뱃불을 지져 끄며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가 그녀를 따라 나서자 둘은 말없이 해변을 따라 이어진 도로를 걸었다. 평소 같았다면 무어라 말이라도 꺼냈겠지만 그녀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그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바라본 바다는 더욱 더 어두웠다. 시그윈과 붙어있는 것이 바다라 자주 보는 풍경이었지만 이렇게 좋은 길을 산책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유리는 가만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이 풍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쏴아아 쏟아지는 파도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어둠이 모래사장을 집어삼켰다. 일 년에 누군가 한 명씩은 어둠속에 쓸려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리는 전혀 그것에 끌리지 않았다. 사는 것이 즐겁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어둠은 그에게 어떤 유혹도 되지 못했다.


  길의 끝에는 야외 수영장이 있었다. 로즈는 그리로 걸어가 발을 물속에 넣었다. 유리는 가만히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몇 번 발을 움직이다 로즈는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유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흰 수영복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로즈는 물속으로 들어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머리가 수분을 머금어 촉촉해졌다. 따뜻해요, 기분 좋네. 천진난만한 로즈의 말에 유리는 웃었다.


  “유리도 들어와요.”

  “아, 전 옷을 안 가지고 왔어요.”

  “흐음, 돌아가면 벗어놓고 자면 되잖아요?”


  로즈는 직접 나와 유리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럼 잠시만요 티셔츠만 좀 벗ㄱ……! 그의 말은 물에 의해 묻혀 버렸다. 그녀의 힘에 이끌려 수영장에 풍덩 빠져버린 유리는 로즈의 장난에 계속해서 물을 먹어야만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녀를 들어 물속으로 빠트려버리곤 얼굴에 흐르는 물을 닦아내자 곧 로즈는 물 밖으로 얼굴 내밀고 웃었다. 둘의 검은 머리가 가지런히 뒤로 넘겨졌다. 이왕 들어간 김에 몇 번이고 둘이서 장난을 치다 수영장에서 빠져나온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파티보다도 이쪽이 훨씬 즐겁다고 유리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머리에서 따뜻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수건 같은 거 없나.”

  “안에 들어가면 있을지도요.”

  “갖다 줄까요?”


  유리의 말에 로즈는 웃으며 됐다고 손을 내저었다. 생각해보니 그와 달리 그녀는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유리도 그냥 바람에 천천히 옷을 말리기로 했다. 그녀의 말대로 정 안되면 벗고 자면 되는 것이고, 하룻밤정도 널어놓으면 옷 정도야 금방 마를 테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천천히 걸어 다시 왁자지껄한 것으로 향했다. 로즈의 손에는 그녀의 티셔츠가 들려있었다. 파티장에 다 다다랐을 때, 유리는 그녀에게 옷을 입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을까요? 그의 말에 로즈는 제 옷을 내려다보더니 웃었다.


  “불 빌려줘서 고마워요.”


  로즈의 입술이 유리에게 닿은 것은 짧은 순간이었다. 바람보다도 그녀의 체온이 더 따뜻했다. 로즈가 웃어 유리도 따라 웃었다.


  “그 인사 너무 늦게 하네요.”

  “이제라도 하는 게 어디에요?”


  그녀는 옷을 입었다. 즐거웠어요. 유리의 말에 로즈는 사랑스럽게 웃곤 원래 있던 제 자리로 향했다. 그는 푹 젖어버린 제 옷을 바라보다 그녀와는 다른 자리로 걸었다. 잠시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들어가서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모두 취해 있어 그 하나정도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모를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둠은 여전히 넘실대고 있었다. 하지만 바다는 유리에게 닿지 못했다. 그 어둠마저도 사랑스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