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2 - 쓸데없는 생각
나한테 이런 중요한 임무 맡겨도 되는 거야? 유리는 어색한 옷을 입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옷은 카일 덕에 어떻게 구했다지만 머리를 만지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머리는 깔끔하지 않았지만 유리는 대충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여기서 더 건드리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유리는 힐끔 시계를 보았다. 슬슬 나가야했다.
탈의실의 문을 열고 나가자 누군가 그를 불렀다. 유리! 유리는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의 임무를 알고 있는 여자였다. 준비는 다 했어? 뭐, 대충요. 대충 하면 안 돼! 그녀는 그의 몸에 향수를 뿌려 주었다. 시원한 향이 그의 코끝에 닿았다. 서류는? 그녀의 물음에 유리는 제 품 속을 두드렸다. 죽지 않는 한 내놓지 않을 테니까요. 그녀는 힘내라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리는 위로 향했다. 2, 3, 4, 숫자가 바뀌는 것을 바라보던 유리는 9라고 적힌 층에서 내렸다. 다른 이들이 카지노장으로 들어서는 와중에 유리는 방향을 돌려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 층을 더 올라가자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는 레스토랑 앞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옆에 있는 문으로 향했다. 11층으로 향하는 비상계단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리는 그리로 들어가서 11층으로 올라가기 전 잠시 문 옆에 기대어 섰다. 발로 몇 번 계단을 두드렸다. 유리는 잠자코 기다렸다.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비상계단의 조명이 꺼졌다. 유리는 품속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총을 들고 올걸 그랬나.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봐야 이미 늦었다는 걸 유리는 잘 알고 있었다. 유리가 총을 싫어하는 건 탕, 하는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였다. 아무리 소음기를 달아도 유리의 귀에는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린 후에는 누군가가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마치, 그의 누나처럼.
쓸데없는 생각. 하지만 생각에 잠긴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위험한 시간인지 유리는 잘 알고 있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팔을 뻗어 남자의 멱살을 끌어당겼지만 그 또한 유리의 팔을 붙들었다. 쿠당탕, 소리와 함께 그들은 바닥에 뒹굴었다. 유리의 칼은 목표했던 위치를 찌르지 못하고 남자의 어깨에 박혔다. 이게 다 ‘쓸데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자가 자신을 쫓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쫓아올 테면 와보라는 식으로 유인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잠시의 순간 때문에 계획이 틀어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젠장.”
유리는 숨을 몰아쉬며 칼을 잡아 뺐다. 다행인 건 남자의 손에서 총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유리의 공격은 무쓸모한 것이 되지 않았다.
“잘도 쫓아왔네.”
남자의 위에 올라탄 유리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불빛이 환히 계단을 밝히고 있었다.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채로 남자는 유리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흰 셔츠 위로 피가 번져가고 있었다. 유리는 발로 그가 떨어트린 총을 저 멀리 밀어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어요?”
“…….”
“하긴, 경찰이 마피아한테 유언을 남기는 것도 웃기지. 그쵸?”
남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것을 보며 유리는 칼로 그의 가슴을 찔렀다. 그리곤 그 자리를 후벼 파듯 칼로 상처를 헤집었다. 남자의 신음소리에도 유리는 멈추지 않았다. 붉은 피가 튀어 유리의 옷을 적셨다. 그렇게 몸을 마구 떨던 남자가 움직이지 않게 되어서야 유리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은 부러 그 자리에 꽂아두었다. 옷에 더 이상 피를 튀기고 싶지는 않았다.
유리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남자에게 끌어당겨져 엉망이 된 넥타이를 고쳐 매려다 손에 묻은 피를 보고 혀를 찼다. 이거 완전 엉망이네. 유리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 앞에 서서 겉옷을 벗어들었다. 제 돈으로 산 것이면 괜찮을 텐데, 선물 받은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 짜증나는 결과였다. 그가 자신의 옷을 골라주느라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생각하면 더 그랬다. 뭐, 이미 젖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만. 유리는 주머니에서 카드키를 꺼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은 조용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남자는 피에 젖어 들어오는 유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밑에 시체 하나 있는데요. 유리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어딘가로 연락을 한 뒤 자리에서 사라졌다. 유리는 조용한 복도를 걸어 금고로 향했다. 장부를 싸고 있던 비닐을 벗기고 그것을 금고 속에 넣은 뒤 바로 그곳을 나왔다. 혹시 몰라 했던 조치였는데, 그러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유리는 비닐을 휴지통에 버렸다.
유리는 11층으로 옮겨지고 있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피가 뚝뚝 바닥 위를 적시고 있었다. 니가 죽인 거야? 그보다 계급이 높아 보이는 한 여자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유리는 네, 하고 답했다.
“죽이려면 좀 깔끔하게 죽이던가. 귀찮게, 진짜.”
“죄송합니다.”
하지만 안 그랬으면 제가 죽을 뻔 했는 걸요. 여자는 피투성이인 유리의 모습을 보며 알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손을 휘휘 젓는 모습에 유리는 걸음을 옮기려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래가지고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다.
“화장실 옆방에 여분의 옷 있어.”
“감사합니다.”
유리는 구석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대충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화장실 옆에 있는 문을 열자 푸른색의 청소부 용 옷이 몇 개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유리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청소부 옷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에 평생 있을 것이 아니라면 갈아입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옷을 입고 나오자 아까 보았던 여자가 서있었다. 거기 안에 대걸레 있거든? 그것도 가지고 나와. 유리가 시키는 대로 하자 여자는 피가 묻은 복도를 가리켰다. 닦아. 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니가 저지른 일은 니가 수습해야지.”
네네, 그럼요. 그래야합지요. 유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대걸레를 끌고 그리로 향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건이 ‘쓸데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담배가 아주 절절히 그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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