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with 세르게이)
1.
유리는 제시카의 날개를 볼 때마다 문신의 의미를 생각했다. 검은 날개가 그녀의 등 뒤에서 항상 펄럭이고 있었다. 그건 제시카와 유리가 고아원에서 탈출하던 날, 서로 손을 꼭 잡고 가서 한 것이었다. 유리는 가만히 앉아 그녀가 시술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시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유리의 손을 꼭 쥔 채로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사람도 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제시카는 어느 건물의 옥상에 서서 말했다. 그날도 그녀의 등에는 검은 날개가 있었다. 하지만 날개는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날개를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제스.
왜?
날고 싶어?
유리의 질문에 제시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유리는 그녀의 등에서 진짜 날개가 솟아 그녀를 하늘 위로 데려가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하늘 가까이 오르는 순간 날개가 사라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등에 날개는 왜 새긴 거야?
그래서 유리는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제시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려갈까. 그녀의 붉은 머리가 바람결에 휘날렸다.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시카가 바닥을 지나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유리는 제시카에게서 날개의 의미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2.
세르게이에게는 문신이 많았다. 그는 유리에게 문신을 한 곳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단 두 번 갔을 뿐이지만 유리는 그곳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곳이었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며 유리는 세르게이에게 조심하라고 말을 건넸다. 저 또한 어릴 적에 한 번 넘어질 뻔한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조심해, 유리. 제시카가 손을 잡아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게이는 작은 방 안으로 먼저 들어섰다.
세르게이가 문신을 새기는 동안 유리는 방 안을 돌아보았다. 어린 나이에 문신을 하려는 제시카를 타투이스트는 말렸다. 커 가면서 이상해질지도 몰라. 괜찮아요. 제시카는 막무가내로 의자에 앉았다. 유리는 멍하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결국 제시카의 고집에 못 이겨 그녀의 등에 날개를 새긴 여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해져도 난 책임 못 져. 고마워요. 하지만 그녀가 죽을 때까지 제시카의 날개가 꺾이는 일은 없었다.
세르게이는 유리의 문신이 잘 나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문신을 직접적으로 볼 일이 없었다. 그래서 잘 나왔는지 못 나왔는지도 몰랐다. 고마워요. 유리는 도안들 사이에서 제시카가 새겼던 것을 찾아냈다. 자신의 등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의미도, 예쁜지 어떤지도 잘 몰랐지만 유리에게는 제시카가 새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유리가 홀로 타투이스트를 찾았을 때 그녀는 제시카에 대해 묻지 않았다. 같은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제시카가 어떻게 되었는지 듣지 않아도 짐작한 듯 했다. 유리의 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유리는 도안을 한 바퀴 다 둘러본 후 세르게이의 옆에 앉아 그의 등에 문신이 새겨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혀진 그의 문신은 세르게이의 다른 문신들처럼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것으로 충분했다. 세르게이의 등에 새로 새겨진 그것은 얼핏 보면 날개 같기도 했다. 유리의 것과는 달랐지만, 어쨌든 그것은 세르게이만의 날개였다. 유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3.
wing[n] : 1. The wings of a bird or insect are the two parts of its body that it uses for flying.
유리는 제시카가 죽은 후 사전에서 날개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제시카는 날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날개가 필요했을까? 유리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사전을 덮어야만 했다.
그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자신의 등에 문신을 새기며 알아냈다. 제시카는 그냥, 날개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날 수는 없지만 날고 싶다는 마음이 그 곳에 있었다. 유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날개를 갖게 되었다. 제시카가 물려준 것이었다.
4.
세르게이는 문신을 새기는 동안 기다려준 유리에게 담배를 한 갑 사주었다. 유리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그는 웃으며 세르게이에게서 담배를 받아들었다.
“잘 새겨졌어요, 그거”
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세르게이의 등을 가리켰다. 세르게이는 담배를 피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아까 거울로 확인했을 것이었지만 한 마디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마음에 들어요? 유리의 물음에 세르게이는 그렇다고 답했다. 유리 또한 세르게이가 사준 담뱃갑을 뜯어 담배를 입에 물었다. 흰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날개 같아요.”
“그래 보여?”
“모양이 꼭.”
이렇게. 유리는 손으로 허공에 세르게이의 문신 모양을 덧그렸다. 세르게이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린 후 발로 짓밟았다.
“오늘은 별로 안 바쁜가?”
“어차피 약은 낮에는 못 파니까요. 악세사리나 팔까 하고 있었죠.”
“악세사리?”
네, 제가 만든 건데요. 볼래요? 유리는 들고 있던 가방을 열어 세르게이에게 보였다. 반짝거리는 것들이 세상의 빛을 받았다. 세르게이는 그것들을 가만히 지켜보다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나마 가장 심플한 디자인의 것이었다.
“이거 하나 줘.”
“사주시게요?”
유리는 세르게이에게 돈을 받았다. 어느새 유리의 담배도 짧아져 있었다. 그럼 가볼게요. 팔찌 잘 쓰세요. 그가 쓸 것 같진 않았지만 유리는 그렇게 말했다. 세르게이는 담배 한 가치를 더 빼어 물며 유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등에 날개를 단 두 남자는 그렇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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