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with 에단)
그와는 몇 번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유리는 자리에 앉아 있다 저를 향해 걸어오는 남자에게 반가운 척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다곤 해도 썩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았기에 유리는 급히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다행히 그에게 여지를 줄만한 점은 없는 것 같았다.
남자는 앉자마자 맥주를 한 잔 주문했다.
“잘, 지냈냐고 묻기엔 얼굴이 너무 안 좋은데요.”
유리는 그리 물으면서도 이유에 대해선 대강 짐작을 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마피아 소탕 작전 때문이겠지. 지알레는 CSP가 저희 세력권에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고, 미리 대비해둔 덕에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세력을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그 세력권을 확대시킬 수 있었다. 유리 개인은 그 전투 때문에 부상을 입고 제대로 작전을 성공시키지도 못했지만 조직의 승리로 별다른 문책 없이 넘어갔다.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요즘 마피아들이 어찌나 설쳐대는지…….”
“참 그 놈들이 나쁜 놈들이죠.”
그 말에 에단은 유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유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를 마주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항상 걸치고 있던 CSP 자켓을 어딘가 두고 온 듯 했다. 유리도 이번 작전 실패로 인해 CSP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많이 안 좋아진 것은 알고 있었다. 영웅은 항상 승리해야만 했다. 그러지 못한 영웅은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쪽은 별 일 없었어요?”
“저요?”
남자는 유독 저만 만나면 마피아, 혹은 그와 관련된 사건에 대해 은근슬쩍 떠보곤 했다. 감이 좋은 건지, 아니면 뭔가 알고 있는 건지. 하지만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떠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당장 체포해서 데려갈 이라는 걸 알았기에 유리는 피하지 않았다.
“저야 뭐 별 일 있을 일이 있나요. 이렇게 얌전히 펍에서 술이나 마시는 선량한 시민인데.”
실은 총알이 스친 옆구리가 아직 다 낫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지알레는 그런 사소한 부상으로 일을 쉬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거기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제게 메이드맨이라는 이름을 달아준 뒤로는 일이 더 많아져 도무지 쉴 수가 없었다. 딱히 높은 자리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유명해질수록 죽을 확률만 높아진다는 걸 알았기에 조용조용히 살아가던 제게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렴풋이 높은 자리에 있던 조직원들이 많이 죽은 건가, 하고 생각할 뿐, 그런 걸 누군가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에단은 묵묵히 맥주를 마시며 유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의심이 잔뜩 깔린 그 눈 속에서 유리는 ‘맹수로서의 감’ 같은 걸 느꼈다. 그렇다고는 해도 CSP가 감만으로 지알레를 잡아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뭐, 피곤해보이시니 오늘 술은 제가 살까요.”
미안하다거나 그런 감정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여기저기 다친 듯한 남자가 안쓰러웠을 뿐이었다. 유리는 손을 들어 맥주 두 잔을 더 주문했다. 종업원을 부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던 유리는 고정해둔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느낌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다행히 반쯤 들어 올린 손만 보고도 종업원은 그를 알아차려주었다.
“어디 다친 데라도 있어요?”
“네?”
“옆구리라던가.”
에단은 손으로 유리의 다친 상처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유리는 아무렇지 않게 웃어보였다.
“일을 좀 하다 보니 근육이 뭉쳤나 봐요.”
“……그래요?”
“뭐, 그런 날도 있죠.”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유리의 물음에 에단은 잠시 생각하다 뭐, 그렇죠, 하고 답했다. 사실 유리는 에단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꽤나 재밌었다. 마치 말로 숨바꼭질을 하는 느낌이었다. 아직까진 제가 이기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언가를 숨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에단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유리는 평온한 상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긴장감이 즐거웠다. 실은, 에단의 말이 맞다는 걸 다 알고 있기에 그런 걸지도 몰랐다. 의심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에단이 자주 찾아오곤 하는 이 펍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거였다.
그 후로도 숨바꼭질 같은 대화는 계속되었다. 유리는 요리조리 잘 숨었고, 에단은 그를 찾아 말의 바다를 열심히 탐험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에단은 유리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다. 감은 그에게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주었지만 정확한 곳을 알려주지는 못했다. 유리는 그늘에 숨어 그를 바라보았다.
“더 마실 거예요?”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고, 유리는 이번엔 다치지 않은 쪽의 손을 들어 맥주를 주문했다. 에단이 저를 빤히 보는 것이 느껴졌으나 거리낄 것은 없었다. 아직 그로부터 몸을 숨길 충분한 힘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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