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 Rob 2014. 10. 3. 22:03

미션 0 - 무지개


1.


  “유리, 너 그러다 진짜 죽어.”


  남자의 입에서 희뿌연 담배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럼 죽지, 뭐.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유리의 말에 여자는 그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갈겼다. 유리의 입에서 이미 잔뜩 짧아진 담배꽁초가 툭, 하고 떨어졌다. 붉은 불빛이 마지막으로 화르륵 타올랐다가 곧 사그라졌다. 유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엉망이 된 제 뒷머리를 매만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곧 비가 쏟아질 것 마냥 어두웠다. 유리는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인생인 것만 같아 웃음이 나왔다. 여자는 여전히 잔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유리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그런 그를 알아챈 여자가 다시 한 번 유리의 뒤통수를 쳤다.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죽을 때까지?”

  “미친 놈.”


  여자의 붉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검은 나시를 입은 그녀의 등 위로 검은 날개가 보였다. 유리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로 뻗어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집에 가자. 그녀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스, 나 초콜릿 하나만 사주면 안 돼? 툭 던져진 유리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답했다. 돈 없으니까 참아. ……응. 유리는 다시금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이 조금씩 걷히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아마도 구름이 걷혔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일 것이다. 유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2.


  제시카는 유리가 고아원에서 도망쳐나올 때 함께 나온 사람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후 그녀는 유리에게 자신을 제스라고 부르도록 시켰다. 뒷골목에서 여자라는 성별은 약점이 될 뿐이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성별을 숨겼고, 그래서 유리는 그녀를 제스라고 부르고 남자처럼 대했다. 나이가 들고 자신이 여자인 것을 숨길 수 없게 되었을 때 제시카는 그 골목에서 남자로 통했다. 웬만한 남자보다 더 성질이 괄괄한 그녀를 쉽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리로 말할 것 같으면 뒷골목에서 유명한 소매치기였다. 훔친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으며 번 돈은 모두 군것질과 담배를 사는데 쓰였다. 돈을 벌지 못한 날은 굶었고, 가끔 상대에게 붙잡혀 죽도록 맞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를 구해준 것은 제시카였다. 그녀는 유리가 마치 자신의 남동생인 것처럼 굴었다. 유리는 어린 나이에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동생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


  뒷골목의 마약 상을 만난 것은 폐가 타들어가도록 담배를 피우던 어느 비오는 날이었다. 남자는 그에게 무언가를 권했고, 유리는 담배보다 더 환상적인 맛에 마약에 계속해서 손을 뻗었다. 쓰레기통 위에 널브러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그를 찾아내는 건 항상 제시카의 몫이었다. 그럴 때마다 유리는 제시카에게 얻어맞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마약은 중독적이었다. 세상이 핑그르르 도는 감각. 하늘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매일 흐리기만 하던 하늘은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손을 뻗자 색색의 무지개가 펼쳐졌다. 그것이 환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리는 매일같이 그것을 탐했다. 제시카의 협박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몸은 점점 더 말라만 갔고, 제시카의 폭력 또한 더욱 거칠어지고 있었다.


  매일 밤 유리는 꿈을 꾸었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의 무지개가 그의 손 위에 있었다. 그는 무지개를 움켜쥐었다. 그것은 분명 그의 손 위에 있었다.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다.




3.


  마약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유리는 소매치기를 그만 두고 마약을 팔기 시작했다. 뒷골목에는 그처럼 환상을 쫓는 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마약을 팔고, 돈을 받아 마약을 샀다. 여전히 유리는 쓰레기통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제시카가 지알레의 조직원으로 들어간 것은 그 때쯤이었다. 그녀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리를 환상으로부터 지킬 힘. 그녀는 자신이 분명히 자리를 잡고 그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있게 되면 유리가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터전이 필요했고, 돈을 벌어야만 했다. 제시카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이 길어지고, 유리는 집보다도 골목에서 잠드는 일이 더 많아졌다. 집은 유리의 정신만큼이나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4.


  유리가 오랜만에 ‘제스’를 만난 것은 어느 부잣집 아들에게 마약을 팔던 도중이었다. 그는 지알레의 뒤를 봐주던 어느 사업가의 외동아들이었고, 지알레의 적대조직은 그를 노리고 습격해왔다. 제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유리는 갑자기 제 손을 이끄는 익숙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머리의 여자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로 그를 보고 있었다.


  “유리, 왜 여기 있는 거야?”

  “제스……?”


  그 순간 총소리가 들렸다. 탕-! 정확히 유리를 노리고 날아온 총알은 그의 앞을 가로막은 누군가에 의해 막혔다. 제시카의 몸이 휘청, 하고 흔들렸다. 그 순간 유리는 현실로 돌아왔다. 제시카의 몸이 그의 위로 쓰러졌다.


  “제스!”


  유리는 손을 덜덜 떨며 그녀를 끌어안은 채로 구석으로 피했다. 다행히 더 이상의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유리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몸을 살폈을 때, 제시카는 벌써 숨을 거둔 뒤였다. 유리의 몸 위로 붉은 피가 쏟아졌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흐른 적 없던 눈물이 그녀의 몸 위로 흘렀다. 단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 또한 제시카를 자신의 누나로 여기고 있었다. 누나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그녀가 동생과 하나도 닮지 않은 자신을 동생으로 여겼듯 그 또한 그녀를 누나라고 생각했다. 먹구름이 그의 위로 비를 마구 뿌려댔다.


  더 이상 무지개는 그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5.


  유리는 마약을 끊었다. 간혹 제시카가 생각날 때에만 마약을 했다. 더 이상 환각은 그에게 맑은 하늘을 보여주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눈앞에 붉은 머리와 검은 날개가 보였다. 유리는 그녀의 뒤를 쫓아 지알레에 들어갔다. 그의 등에도 검은 날개가 솟아났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그는 일을 했다. 유리는 여전히 흐린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무지개를 찾지는 않았다. 그건 원래부터 유리의 손에 잡힌 적이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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