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3 - 뻔한 함정 (with 라클런)
“모리슨 대위. 할 일 없으면 나랑 같이 나가지.”
책을 읽던 라클런 모리슨을 부른 건 진 헤이든 이었다. 그는 옷을 다 갖춰 입은 채로 연구실 문가에 서서 라클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할 일을 마치고 책상을 정리하던 라클런은 그를 돌아보고는 웃음 지었다.
“딱히 할 일은 없지만……, 무슨 일인데요?”
“쇼핑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야. 연구실 비품 떨어진 걸 좀 채워 둬야할 것 같아서.”
진의 말에 라클런은 아까 열어보았던 서랍 속이 텅텅 비어있던 것을 떠올렸다. 연구를 하다보면 책상은 하얀 종이로 뒤덮여 엉망이 되곤 했다. 계산식들과 생각의 조각들,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이 모여 종이의 산을 이루고 나면 남는 것은 재활용할 종이들뿐이었다. 진에게는 노트라던가 필기구라던가, 몇 안 되는 연구원들이 두 달 만에 다 써버린 그것들을 채워 넣어야할 책임이 있었다.
“잠시만요, 그럼 방에 가서 옷 좀 입고 나올게요.”
“그래, 그럼 바로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진은 그대로 몸을 돌려 카엘룸의 갑판으로 향했다. 유로는 오늘도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었다. 피부에 와 닿는 끈적끈적한 공기를 뒤로 하고 진은 준비해둔 검은 우산을 펼쳐들었다. 라클런은 금방 짙은 회색의 제복을 입고 그를 쫓아 나왔다. 어두컴컴한 하늘과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맑게 웃는 라클런의 모습이, 진은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부함장님, 배 안고프세요?”
대충 주문을 마치고 슬슬 카엘룸으로 돌아가 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진은 제 뒤를 쫓아오는 라클런을 돌아보았다. 그의 손에는 검은 비닐 봉투로 싸여진 무언가가 잔뜩 들려있었다.
“배고파?”
“조금요. 벌써 세 시인걸요.”
그들이 카엘룸에서 나온 게 한 시쯤. 그러니까 두 시간 정도 돌아다녔다는 소리였다. 점심을 먹지 않았느냐고 묻자 라클런은 연구를 하느라 잊어버렸노라고 답했다. 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밥은 잘 챙겨 먹으라니까.”
“집중하면 배고픈 것도 잘 몰라서요.”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이는 라클런의 모습에 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몇 번 말한다고 이십 몇 년간의 습관이 고쳐질 리가 없었다. 뭐, 내가 더 참견할 일도 아니고. 라클런은 그런 진의 앞에서 손을 들어 올려 골목 한 구석에 있는 노점상을 가리켰다. 저거라도 먹고 들어가요, 우리. 그곳에서는 진한 향이 발라진 닭꼬치를 팔고 있었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라클런의 뒤를 쫓았다. 저와 함께 쇼핑을 나와 짐을 들어주는 값으로 그 정도는 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드세요.”
라클런은 짐을 옆에 내려놓고 닭꼬치를 하나 집어 들어 진에게 먼저 건넸다. 붉은 양념이 칠해진 닭꼬치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많이 먹어. 배고프다며.”
“그렇게 말하지 않으셔도 많이 먹을 거예요.”
진은 어찌나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닭꼬치를 집어 드는 라클런의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한 입 베어 문 닭꼬치는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것과는 달리 꽤나 달콤한 맛이었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은 진이 천천히 닭꼬치를 먹는 동안, 라클런은 빠른 속도로 배를 채워 나갔다. 보다 못한 진이 좀 천천히 먹으라며 핀잔을 주자, 라클런은 그제야 머쓱한 듯 웃었다. 많이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맛있네요,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확실히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지.”
“이게, 식당에서 만든 거랑 이렇게 길거리에 서서 먹는 거랑 맛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분명 같은 방법으로 만드는 걸 텐데 말예요. 왠지 밖에서 먹는 게 더 맛있는 것 같아요.”
“그걸 한 번 연구해보는 건 어때? 왜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이 더 맛있는지에 대해서.”
진이 농담 삼아 던진 말에 라클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의 표정은 꽤나 진지했다.
“아, 그거 괜찮을 지도요. 제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심리적인 요소가 강하지 않을까요?”
“……아마 그렇겠지?”
“그럼 부함장님 전문 분야도 아니네요. 아쉽다. 진짜 해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라클런은 다섯 개 째의 빈 꼬치를 앞에 내려놓았다. 그래도 먹는 속도가 줄어든 것으로 보아 배가 조금 찬 것도 같았다. 애초에 양도 얼마 되지 않는 닭꼬치로 배를 전부 채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맛있는 것도 처음 몇 번이지, 계속 같은 것만 먹으면 질리게 되는 것이다. 진은 제 앞에 제가 먹은 꼬치를 내려놓으며 이만 카엘룸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려고 했다.
스윽, 저희 뒤로 나타난 그림자가 그들 옆에 놓인 짐을 들고 가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터였다.
“앗, 그거……!”
“라클런, 쫓아!”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검은 봉투를 들고 골목을 내달렸다. 머뭇거리던 것도 잠시, 라클런과 진은 힘껏 달려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남자는 빠른 속도로 그들을 피해 달렸고, 라클런과 진은 무작정 그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잡힐 듯 말 듯한 추격전이 꽤나 오랜 시간 이어졌고, 복잡한 골목 사이를 달려 남자가 들어간 곳은 허름한 가게 안이었다. 라클런과 진은 그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
“이거, 들어가도 될까요?”
“그럼 말까?”
“함정 같은데.”
대충 봐도, 우리를 일부러 기다렸다는 느낌이 팍팍 오지 않아요? 라클런의 말에 진은 수긍했다. 제복을 모두 갖춰 입은 라클런과 진을 몰라보고 물건을 훔쳤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들은 훈련받지 않은 민간인일 뿐. 아무리 연구원이라고 해도 훈련된 군인인 그들이 민간인에게 쉬이 당할 리는 없었다.
“그럼 들어가지는 말고 문을 부숴버리자고. 그럼 튀어나오겠지.”
진은 품속에서 총을 꺼냈다. 그리곤 그대로 문이 달려있는 경첩을 쏘아버린 후 발로 문을 걷어찼다. 강한 힘으로 뜯겨져나간 문이 뒤에 있는 사람을 덮친 듯 몇 명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이 각자의 무기를 든 채로 집 안에 숨어있는 것이 보였다. 라클런은 흐읍, 하고 숨을 삼켰다.
싸우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연구원이라 항상 뒷자리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그들에게는 오랜만의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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