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 Hayden 2014. 8. 24. 10:47

박하 사탕 (with 라클런)


  지원자, 아니, 이제는 합격자라고 해야 하나. 카엘룸에 오르기로 예정된 사람들의 리스트를 살펴보던 진은 라클런 모리슨의 이름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군인들의 방이 아무리 더럽다고 해도 거기서 거기일 거라는 예상을 깨준 것이 그였다. 둘이서 방 하나를 치우는데 몇 시간이 걸렸더라. 심지어 라클런은 도움조차 되질 않았다. 그냥 저 혼자 다 치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그것만 아니라면 참 좋은 사람이었다. 맡은 바 일은 성실히 해냈고, 머리도 꽤 좋았다. 거기다 성격도 괜찮아 같이 연구하기에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카엘룸에 오르게 되면 그 방을 또 봐야하는 건가. 그 생각을 하니 진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신경을 안 쓰면 된다는 걸 알지만, 제 성격에 그렇게 될 리가 없었다.


  이왕이면 내 방에서 멀리 떨어져있으면 좋겠는걸. 최소한 눈에라도 덜 보이는 편이 나을 테다. 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리스트를 다시 테이블 위에 반듯이 올려두었다. 슬슬 자신의 짐 또한 카엘룸으로 옮겨두어야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앞에 섰다.






  3년 만에 만난 라클런은 여전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여전하기보다는 그의 방이.


  “이제 이것만 내놓으면 되나?”

  “그런 것 같아요.”


  라클런은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거의 다 내가 치운 것 같은데…….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방을 이렇게 어질러놨어?”

  “그게, 정리보단 짐을 옮기는 걸 우선시하다보니…….”


  하하, 그래도 대령님 덕에 깔끔해졌네요. 넉살 좋은 라클런의 말에 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왕이면 이 방이 내 눈에 좀 안 띄게 해. 자주 좀 치우면 더 좋고.”

  “그럴게요.”


  정말 대답은 잘 한다. 하지만 진은 그의 대답을 믿지 않았다. 3년 동안 고쳐지지 않은 버릇이 그렇게 쉽게 고쳐질 리가 없다. 애초에 방을 배정한 이가 누구인지, 자신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복도에 라클런의 방이 있을 게 무어람. 오늘만 해도 제 짐을 갖다놓으러 왔다가 잠깐 들른 참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다 익숙한 방이 보여 들어왔더니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이러다 내가 니 방 청소도우미로 취직할 것 같은데.”


  설마요. 라클런은 그렇게 답하며 웃었다. 아마도 농담으로 받아들인 듯 했다. 말하는 진은 반쯤 진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청소도 끝냈고, 밥이나 먹으러 갈까? 내가 사지.”

  “정말요?”


  사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라클런의 방을 처음 본 날, 저녁을 먹자고 부르러 가선 계속 청소를 하느라 밥을 먹지 못한 것이었다. 상관인 입장으로서, 저 때문에 라클런이 배고파하는 걸 보면서도 매정하게 지나칠 정도로 자신은 모질지 못했다. 진은 벗어두었던 겉옷을 다시 걸쳤다.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진의 물음에 라클런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 자신이 잘 아는 집이 있다며 함께 가자고 권했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라클런의 뒤를 쫓았다.






  라클런과의 식사자리는 즐거웠다. 그는 즐겁게 대화를 이끌어나갈 줄 알았고, 또 익숙한 상대였으므로 상대하기 편했다. 대화 주제는 다양했다. 카엘룸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그동안 자신들이 했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3년 전, 랩에서 조수에 가까운 위치였던 그는 어느새 자신이 직접 큰 연구를 지휘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올라 있었다. 하루에도 몇 십, 몇 백 명의 목숨이 사라지곤 하는 전장 속에서 그는 아주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었어요.”

  “그래.”


  결제를 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 서자 라클런이 다가와 그를 향해 웃었다.


  “청소도 도와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이거 받기만 해서 죄송한걸요.”

  “죄송하면 방 청소나 잘 해.”


  미리 신경 안 쓰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진은 라클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던 그는, 카운터 옆에 하얀 사탕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입가심용 박하사탕이었다.


  “아참, 자.”


  진이 그것을 손으로 집어 라클런에게 건네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양손으로 받아들었다. 진은 하나를 더 집어 자신의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싸한 향이 입 속으로 퍼져나갔다.


  “아까 받은 사탕의 답례는 이정도로 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곤 웃으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진은 달달한 과일 향보단 싸한 이 느낌을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배도 부르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도 함께였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Gene Hayd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구실_책상_위에서_두_남자가.txt (with 라클런)  (0) 2014.08.24
식물원 산책 (with 루이케)  (0) 2014.08.24
커피 한 잔 (with 트립)  (0) 2014.08.24
선택 (with 슈안)  (0) 2014.08.24
미션 0 - 시작  (0) 201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