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 Hayden

식물원 산책 (with 루이케)

cha1 2014. 8. 24. 10:48


  아폴론 스테이션엔 커다란 식물원이 있었다. 그곳은 다양한 식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식물을 연구하는 연구원을 위한 곳이기도 했다. 군의 연구원, 혹은 국가 공인 연구 기관에서 허락 받은 이들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곳. 진은 그 곳에서 칸델라의 인공재배실에 심을 씨앗 몇 가지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 참이었다. 진의 주 연구 분야는 식물이 아니었으나 부함장이자 연구원들을 총괄하는 입장으로서 그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한 바퀴 둘러보고 갈까. 진은 손에 짐을 든 채로 식물원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물원 안쪽은 인공 태양 및 온도 조절기로 인해 식물이 살기에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진의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평소 꽃에 관심이 많은 진이었으나 식물원에는 그가 모르는 꽃들이 많았다. 그가 작은 화분에 기를 수 있는 꽃과 식물원의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기를 수 있는 꽃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카엘룸에 오르면 한참 동안은 보지 못할 것들이기에 진은 천천히 여유를 즐겨보기로 했다. 그는 천천히 식물원을 돌았다.


  열대 식물관을 나오니 목이 조금 말랐다. 아무래도 열대와 같은 환경을 유지하느라 인공 태양의 세기를 세게 하고, 온도와 습도를 높게 설정한 것이 제 목을 타게 한 모양이었다. 시원한 차를 뽑아 벤치를 찾는데 그의 눈에 익숙한 옷을 입은 이가 보였다. 지금 진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옷을 입은 여자였다. 진은 저와 같은 음료를 하나 더 뽑아 그리로 향했다.


  “루이케 소냐……중위?”

  “앗.”


  진을 알아본 그녀는 바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녀의 인사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요. 진은 먼저 벤치에 앉아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진이 사온 차를 건네자 그녀는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여긴 어쩐 일로?”

  “아, 그게…….”


  공기가 좋을 것 같아서요. 자고로 나무가 많은 곳은 공기가 좋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르른 빛깔의 나무들이 식물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령님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루이케의 질문에 진은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진은 제가 들고 있던 가방을 들어 보였다. 검고 네모난 형태의 가방 안에는, 카엘룸에 꼭 들고 타야 할 것이 들어있었다. 카엘룸 내부에 있는 인공 재배실에 심을 개량된 품종의 작물들. 물론 루이케는 인공 재배실과는 연이 없을 전투원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꽁꽁 숨겨야 할 기밀은 아니었다. 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엘룸에 인공 재배실이 있거든요. 거기 심을 것들을 좀 받으러 왔어요.”


  아, 그렇군요. 루이케는 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끝남과 동시에 둘은 동시에 차를 들이켰다. 시원한 바람이 아까 진이 걸어왔던 곳의 반대편에서 불어왔다. 상쾌한 공기가 코끝에 닿아와서, 진은 왜 루이케가 여기에 앉아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근데 여기 계속 앉아있을 거예요?”


  먼저 다시 말을 꺼낸 것은 진이었다. 진은 빈 유리병을 벤치 위에 내려두었다. 시원한 공기와 차로 인해 답답함은 많이 가신 상태였다. 슬슬 다시 일어나서 돌아 다녀볼까 하던 찰나, ‘공기가 좋을 것 같다’고 말하던 루이케가 생각났다.


  뭔가 부족하다 했더니. 진은 곰곰이 생각하다 작게 웃었다. 식물원에 식물을 보러 와야지 맑은 공기를 마시러 오는 사람은 처음 보네. 그는 루이케가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아니면 나랑 같이 한 바퀴 돌고.”


  나라고 식물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보면 좋을텐데. 진의 말에 루이케는 잠시 생각을 하다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그럼 같이 가볼까요? 둘은 벤치에서 일어나 유리병을 버리고 다시금 식물원 안으로 들어섰다. 싱그러운 풀 냄새와 꽃 향기가 섞여 둘을 보드랍게 감싸고 있었다.






  루이케는 진의 ‘한 바퀴’가 그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꽃을 굉장히 좋아하시나 봅니다.”

  “네. 보고 있으면 기분이 밝아지는 느낌이라.”


  겨우 한 구역을 지나왔을 뿐이었다. 앞으로 몇 구역 남았더라……. 루이케는 속으로 생각하며 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정말로 기분이 좋은 듯 했다. 아까 만났을 때부터 그러긴 했지만.


  “여기 오면 평소에 보지 못하던 꽃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처음 보는 꽃들도 많던걸요.”

  “저도 그래요. 여기 있는 꽃이 백몇종가량 될 텐데 제가 아무리 꽃을 좋아한다고는 해도 그런 걸 다 기억할 순 없거든요.”


  나이가 들어서 금방 까먹기도 하고. 진은 그렇게 말하고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루이케도 제 앞의 남자를 따라 조금 웃었다.


  “그래도 예쁘죠?”

  “네.”

  “그래요. 그거면 되는 거예요.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보다 이 편이 더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지 않나요?”


  루이케에게 그렇게 물은 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럼 또 가죠! 의욕 넘치게 그녀를 이끄는 대령을, 루이케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했다. 진의 제안을 거절할 정도로 싫은 건 아니기도 했고, 확실히 진의 말대로 꽃들은 예뻤다. 루이케는 앞서 걷는 진을 쫓아가 옆에 섰다. 진은 다시금 꽃들에 대해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했다. 꽃에 대한 애정이 확연히 느껴지는 따뜻한 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