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with 제러마이어)
유리는 제 얼굴만 한 사탕을 문 채로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다리를 꼰 채로, 멀뚱히 천장에 붙은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비싼 호텔이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그는 천천히 제러마이어가 사준 사탕을 핥았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유리는 홀로 히죽거리며 웃었다. 죽어서도 못 갈 천국을 이렇게 와 보는구나. 그래,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날도 하루쯤은 있어야하지 않겠어? 쏴아아 하는 물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유리는 발가락을 꼼지락댔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스운 상황이었다.
이용권이란 게 식사와 숙박을 모두 다 아우르는 것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제러마이어와 함께 훌륭했던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는 찰나 ‘숙박은 1층 로비에 가서 말하면 안내해줄 겁니다.’하는 종업원의 말에 제러마이어와 유리는 함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러마이어는 데려와서 같이 밥을 먹은 상대를 혼자 돌려보내기 좀 그랬는지 하루 자고 가는 게 어떻겠냐며 유리에게 조심스레 물어왔고, 딱히 일도 없었던 유리는 식사를 수락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 이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물소리가 그치고, 제러마이어는 머리를 하얀 수건으로 말리며 욕실에서 나왔다. 그는 더블 침대에 누워 사탕을 먹고 있는 유리를 힐끗 쳐다보곤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냈다. 긴장되는 건 저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유리는 시원한 물이 제러마이어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사탕을 씹었다. 오독, 하고 끝부분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맛있어요? 사탕?”
“네. 좀 드리고 싶은데 사탕이라 드리기가 애매하네요.”
“됐어요. 좋아하시는 분이나 많이 드세요.”
제러마이어의 말에 유리는 눈을 접어 웃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푹신한 침대가 출렁거렸다.
“이런 데는 나 말고 애인이랑 와야 하는 거 아니예요?”
“그런 거 없거든요.”
“그래요?”
유리는 무릎에 턱을 괴고 제러마이어를 빤히 바라보았다. 괜히 돌아다니며 호텔 여기저기에 놓인 것들을 건드려보던 제러마이어는 저를 쳐다보는 유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유리는 씨익 웃었다.
“그럼 내가 오늘만이라도 애인 해줄까요?”
“네?”
“침대 위에서.”
사탕을 들지 않은 유리의 손이 침대를 두드렸다. 그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 깨달은 제러마이어는 인상을 찌푸렸다.
“농담하지 마세요.”
유리는 대답이 정말로 그답다고 생각했다. 그러자고 했으면 더 이상했을지도. 안 덮칠 테니까 이리 와요. 유리는 좀 더 침대 안쪽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제러마이어는 어색하게 침대에 올라앉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그는 침대 옆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를 켰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그는 스포츠 채널을 틀어놓곤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와아아 하는 소리가 방 안을 메웠고, 유리는 사탕을 오독오독 씹으며 제러마이어와 함께 미식축구 경기를 보았다. 우습게도 스포츠경기보다 더 유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TV를 보고 있는 제러마이어였다. 어느새 미식축구에 푹 빠져버린 모양인지 그는 굉장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간혹 ‘그렇지!’라던가 ‘아오, 진짜 저…….’ 등의 감탄사를 작게 내뱉었다. 그렇게 제러마이어는 TV를, 유리는 제러마이어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 것은 유리가 사탕을 다 씹어 먹었을 때쯤이었다. 오독오독. 마지막 남은 단 맛이 유리의 입 안에서 굴렀다.
“그렇게 재밌어요?”
“아, 네. 뭐.”
경기를 보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이 부끄러웠는지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호텔방에 들어와서 한 일이라곤 씻고 사탕을 먹으면서 TV를 본 것밖에 없네. 유리는 남은 막대기를 흔들다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사탕은 정말로 달고, 크고, 예뻤다.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양치하고 올게요. 제리는 아, 네, 하고 답했다. 그의 손이 어색하게 침대 위를 맴돌았다. 유리는 그 모습을 보다 등을 돌렸다.
돌아올 때는 불을 껐다. 어둠속을 헤치고 걸어 제 자리에 눕자 옆에 누운 이가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다.
“잘 자요.”
“그쪽도요.”
유리는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방음이 아주 잘 되는 곳인 모양인지 호텔 방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는 조용한 밤이 너무도 어색했다. 소리가 전혀 차단되지 않는 유리의 작은 방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옆방에선 매일 싸웠고, 복도에선 술 취한 이들이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애타게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외쳤다. 유리는 그 속에서 지금처럼 가만히 누워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자요?”
결국 유리는 제가 소리를 만들어냈다. 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 자고 있었는지 제러마이어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렸다. 왜요. 목소리에서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나왔다.
“……아니예요.”
깨워서 미안해요. 잘 자요. 제러마이어는 다시 눈을 감은 모양인지 답하지 않았다. 유리는 제러마이어에게 등을 돌리고 누웠다. 사실은 누군가 함께 자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제스. 내뱉지 못한 말은 입 안에서 맴돌았다. 좁은 침대에서,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거리던 낡은 침대 위에서 남매는 그렇게 잠을 잤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꽉 부여잡고 유리는 눈을 꼭 감았다. 경찰을 옆에 두고 약을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긴 밤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