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with 슈안)
방에는 항상 화분이 하나는 놓여있어야 했다. 삭막한 남자 혼자 쓰는 방이라 더 그랬다. 방을 꾸밀 수 있는 건 많았지만 진은 그런 것들은 잘 알지도 못했고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화분뿐이었다.
다만 좋아한다고 해서 많이 들여놓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집보다는 배치된 전장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길었기에 그런 걸 갖다 둔다고 해도 자신이 돌볼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아폴론 스테이션에서의 생활은 의외로 여유로웠다. 방에 앉아서 하는 거라곤 가끔 다른 군인들을 만나거나 승선하기로 예정된 지원자들과 관련된 서류를 읽는 것이 다였다. 하던 연구도 대강 마무리 짓고 왔기에 곧 있을 발표회를 준비하는 것 외에는 따로 할 것이 없었다. 휴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가로운 생활에 진은 작은 화분을 하나 더 사기로 했다. 카엘룸에는 개인실도 있다고 하니 이 휴가 같은 생활이 끝나면 화분을 가지고 타도 될 것 같았다. 어떤 꽃이 좋으려나. 이왕이면 푸른빛과 어울리는 노란 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은 화원에는 사람이 꽤나 많았다. 아폴론 스테이션에 있는 화원 중 가장 큰 곳이었다. 어떤 사람은 축하의 꽃을 사러, 어떤 사람은 진처럼 자신의 공간에 놔둘 화분을 사러 왔을 것이었다. 직원부터 손님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고 있는 와중에, 한 구석에 서서 표정을 잔뜩 굳힌 채 꽃을 노려보는 이가 있었다. 진은 자연스레 그곳을 돌아보았다. 그는 진이 항상 입는 것과 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그 얼굴은 기억에 있었다. 연구원으로 지원했던 미르치 대위였던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요?”
불쑥 말을 건 것은 그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누가 많이 아프기라도 한 걸까? 진은 그 정도의 이유를 생각하고 그의 앞에 있는 꽃을 보았다. 하지만 그건 병문안으로 들고 가기에 적합한 종류의 꽃은 아니었다.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병문안을 갈 때 목이 꺾어지는 백합을 가져가지는 않을 테다. 꽃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그 정도는 잘 알았다.
갑작스레 제게 말을 걸어오는 진을 향해 고개를 돌린 슈안의 표정이 잠시 찌푸려졌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이 남자 뭐지. 하지만 곧 진을 알아본 듯 인상이 조금 풀어졌다. 곧 상관이 될 이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무례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진은 별로 상관없었지만.
“아니,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있길래.”
아……. 진의 말에 슈안은 반응을 보이기는 했으나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괜히 말을 걸었나. 그런 그의 반응에 진은 자신이 괜한 참견을 한 것만 같아 미안해졌다. 혹여나 꽃을 고르는 게 어려워서 그렇다면 조금 도움을 줄까 싶어 그를 불렀던 것인데 그런 가벼운 문제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거, 내가 괜히 말을 걸었나봐요.”
“아닙니다, 그냥…….”
고민 중이었습니다. 슈안의 말에 진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초록색의 눈이 살짝 그늘진 것도 같았다.
“결혼식에 꽃을 보낼까, 싶어서요.”
“결혼식이요?”
“네.”
결혼식이면 좋은 일 아니던가? 진은 다시금 슈안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에게 있어 결혼식이 좋은 일인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생활이니 물어보기는 좀 그렇고. 진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갖가지 색으로 피어난 꽃들이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결혼식이면 신랑 쪽? 신부 쪽? 꽃다발이면 신부 쪽이려나.”
“네. 전 여자 친구요.”
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아까 표정이 그랬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안 좋게 끝났어요? 진의 물음에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다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슈안에게 손짓을 하며 제 앞에 있는 꽃을 가리켰다.
“이 꽃 어때요?”
“예쁘군요.”
“꽃말은 시련이에요.”
아님 이것도 있어요. 괴로움. 진은 또 다른 꽃을 가리켰다. 이건 고독, 이건 이별의 슬픔. 사실 몇 개는 꽃다발로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어차피 진짜로 만들 것은 아니니 상관없었다.
“장난이에요.”
“…….”
“근데 그런 표정 지을 거면 그냥 꽃다발을 안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차피 진심으로 축하도 못해줄 것 같은데.”
마음이 없는 선물이 되어버릴 꽃이 불쌍하잖아요. 진은 그렇게 말하고 슈안의 어깨를 두드린 후 이제야 좀 한가해진 점원에게로 향했다. 어차피 답은 자신이 내리는 것이었다. 슈안에게 말한 것은 자신의 생각일 뿐. 저 밖에 있는 화분은 얼마예요? 진은 점원에게 물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슈안이 꽃을 샀는지 안 샀는지 진은 모르는 채로 화원을 떠났다. 품에 노란 꽃이 심어진 화분을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