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 Rob

좋은 사람? (with 라빈)

cha1 2014. 10. 3. 22:16


  어쩐지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유리는 저를 발견하곤 환히 웃으며 달려오는 남자를 보며 일단은 웃었다. 붉은 머리칼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익숙하다고 생각한 건 머리 때문인가 싶었지만 아닌 것 같았다. 남자가 유리에게 너무나도 친근하게 인사해왔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전에 이거 샀었는데요!”


  남자가 유리의 앞에 들이민 것은 팔찌였다. 유리는 제가 만든 악세사리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는 못했으나 남자의 것을 보자 기억이 났다. 아, 그때 엄마 생일 선물로 드리겠다며 골라달라고 한 사람. 유리는 그에게서 팔찌를 받아들었다.


  “거기가 똑 하고 끊어져서요. 혹시 고칠 수 있어요?”


  남자의 말대로 팔찌의 이음매 부분 중 한 군데가 끊어져 있었다. 그럼요,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 걸요. 유리는 그렇게 답하고 가방 속에서 도구들을 꺼냈다. 남자는 쪼그려 앉아 유리가 끊어진 팔찌를 고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유리는 능숙하게 끊어진 부분을 다시 연결해 그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또 끊어지면 들고 오세요. 남자는 유리의 솜씨에 굉장히 놀란 눈치였다.


  “와, 고맙습니다! 수리비 얼마예요?”

  “뭐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수리비 안 주셔도 돼요.”


  어머니께서 예쁘게 잘 하고 다니시면 좋겠네요. 친절히 답하며 웃어 보이는 유리를 남자는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반짝거리는 눈빛이 왠지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을 하진 않았다. 어쨌든 좋은 뜻으로 바라보는 것일 테니까. 그는 팔찌를 제 주머니에 넣곤 다시 유리의 앞에 놓인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곧 떠날 거라 생각한 유리는 조금 당황했지만 다시 웃었다.


  “이번엔 뭐 찾으세요?”

  “아니, 전에 제가 다시 만나면 제 것도 산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거 있나 보려구.”

  “오늘은 남자가 할 만한 건 별로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 때 한 말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안 그러셔도 돼요. 유리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구, 진짜 예뻐서 그래요. 그리고 곧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제가 너무 받기만 한 것 같아서…….”

  “아니예요, 팔찌 사주셨잖아요.”

  “그럼 저랑 같이 저녁 먹으러 갈래요?”


  제가 쏠게요! 갑작스런 남자의 제안에 유리는 몇 번 거절을 하다 계속되는 제안에 하는 수 없이 수락하고 말았다. 장사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 신나 보이는 그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장사 이만 접으려구요. 어차피 팔릴 만큼 팔렸고. 그리고 유리가 가방을 챙긴 후 그들은 남자가 잘 아는 가게로 향했다.



* * *




  남자의 이름은 라빈이라고 했다. 라빈은 밥과 함께 맥주를 두 잔 주문했다. 술 싫어하세요? 아뇨. 유리도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유리 롭입니다. 예쁜 이름이네요! 라빈의 칭찬에 유리는 웃었다. 라빈도 예뻐요. 그는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답했다.


  식사시간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라빈은 유리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걸었고, 유리는 기쁘게 그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나이가 26살이라는 유리의 말에 라빈은 말을 편하게 하라며 자신의 나이를 밝혔다. 전 24살이예요, 형. 아, 형이라고 해도 되죠? 유리는 그렇게 해, 하고 편하게 답해주었다. 라빈은 만족스러운 듯한 웃어보였다.


  “악세사리요, 진짜 잘 만들던데. 어디서 배운 거예요?”

  “아뇨, 그냥 혼자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생각보다 재밌더라고.”

  “우와, 손재주가 좋나 봐요.”

  “그런 편이지.”


  요리도 다들 잘 한다고들 하고. 우와, 멋지다. 라빈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라빈의 볼이 붉어졌다.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유리는 그가 더 이상 맥주를 시키지 못하도록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형, 형.”

  “왜?”

  “우리 저거 할래요?”


  라빈이 가리킨 곳에는 다트가 있었다. 내기해요, 우리. 라빈이 밝게 말했다.


  “뭐 걸고?”

  “음, 이긴 사람이 상대방 전화번호 따기!”


  그러니까 내가 이기면 형 번호를 내가 따는 거고, 형이 이기면 내 번호를 따는 거예요. 어때요? 유리는 잠시 라빈이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다 웃었다. 같은 거 아냐? 유리의 말에 라빈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달라요! 이겨야만 번호를 따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거예요.”

  “근데 내 번호는 왜?”

  “좋은 사람 같아서요!”


  예쁜 악세사리도 잘 만들고, 망가진 데도 공짜로 고쳐주고, 저랑 밥도 같이 먹어주고……. 라빈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꼽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유리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며 웃다가 민망한 기분이 되어 그의 말을 제지시켰다.


  “나 별로 좋은 사람 아닌데.”

  “원래 본인은 잘 모르는 법이예요!”


  그래서 하기 싫어요? 다트? 시무룩한 말투의 라빈이 울망울망한 눈빛으로 유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하자. 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굉장히 즐거워 보이는 라빈과 함께 다트판으로 향하며 유리는 ‘그럼 비기면 어떻게 되는 거지?’ 따위의 생각을 했다. 그럼 아무도 번호를 못 따는 걸까. 그런 걸 생각하는 자신은 확실히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