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 Rob

미션 1 - 악마의 속삭임

cha1 2014. 10. 3. 22:11


  유리는 그런 사람들을 잘 찾아냈다. 현실을 잊고 꿈을 꾸고 싶은 사람들은 축제라는 명분 아래 웃고, 떠들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셨다. 그럼 유리는 들떠 있는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속삭였다.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을 알아요.


  술에 취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남자는 유리를 돌아보았다. 유리는 웃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의 눈만큼이나 붉은 혀가 날름거렸다.


  소개시켜 줄까요?


  취기가 올라 판단력이 흐려진 이들은 십중팔구 유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이 얼마나 더 수렁인지 모르는 채로 발을 내딛었다. 유리는 그들의 손을 이끌어 문 앞으로 데려다놓는 일을 했다. 주머니에 색색의 약을 꽂아주고, 그 주머니를 차지하고 있던 다른 것들을 가져갔다. 병든 어머니의 약값, 결혼할 딸에게 줄 다이아몬드 목걸이, 연인에게 줄 반지. 유리는 그것들의 값어치를 몰랐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꿈을 꾸고 싶어 하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을 찾아내 속삭일 뿐이었다. 꿈, 더 꾸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그들은 유리에게 손을 벌렸다.


  꿈을 꾸는 이들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유리는 한 사람을 찾아냈다. 주머니에 약을 넣고서 유리는 그녀에게 접근했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담배를 피우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저들의 무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있던 여자는 제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유리를 언짢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유리는 싱긋 웃으며 제 손에 있는 담배를 흔들어보였다. 여자는 조금 경계심을 풀었다.


  “불 좀 빌려주실래요?”

  “담배 피우면서 라이터도 안 들고 다녀요?”


  웃긴 사람이네. 여자는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유리에게 제 라이터를 넘겨주었다. 고마워요. 치익, 소리와 함께 유리의 담배 끝에 불이 붙었다.


  “축제는 어때요?”

  “네?”

  “재밌게 즐기고 있냐구요.”


  시원한 바닷바람, 흥겨운 노랫소리, 팡팡 터지는 불꽃 내음새. 유리는 그것들을 읊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그것들이 와 닿을 리 없었다. 오로지 의지할 수 있는 건 술과 담배뿐일 테니. 그녀는 유리를 빤히 쳐다보다 작게 웃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지금 작업 거는 거예요?”

  “뭐,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좋구요.”


  여자는 다 핀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던져버리곤 품속에서 담배갑을 새로이 꺼냈다. 쳇, 다 떨어졌네. 그렇게 투덜대는 그녀에게 유리는 새 담배를 내밀었다. 여자는 빼앗아들 듯 담배를 가져갔다. 같은 향의 냄새가 그녀에게서도 풍겨오기 시작했다.


  “그쪽은요?”

  “어떨 것 같아요?”


  유리는 웃었다. 그리고 여자에게로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여자는 힐끔 그를 쳐다보았지만 거부하진 않았다. 유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얀 연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하나도 즐겁지 않죠? 여기 오면 뭔가 더 나아질 것 같았는데 바뀐 것도 없고.”


  여자의 눈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유리는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술 마시고 잊고 싶은데 그것도 맘대로 안 되고, 담배로 기운 차리는 것도 순간일 뿐이죠. 아, 어떻게 아냐고요? 나도 그랬으니까.”


  반가워요, 동지. 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휘어 웃었다.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불꽃색과 같은 붉은 눈이 빛났다. 여자는 씨발, 좆같네, 하고 중얼거리곤 담배를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붉은 불꽃이 홀로 타오르다 곧 사그라졌다.


  “그래서 용건이 뭐야?”

  “아니, 그냥 반가워서요. 다들 저렇게 신나하는데 나 혼자 외롭더라구요.”


  얘기나 할까 싶어서 그랬지. 유리는 주머니에 있는 약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가 밖으로 꺼낸 것은 담배갑이었다. 그는 입에 물고 있던 것을 뱉어버리곤 새것을 물었다. 여자가 담뱃불을 붙여주었다.


  “같이 한 잔 할래요? 제가 살게요.”


  신나지도 않는데 여기저기 끌고 다니는 친구들은 버리고 나랑 놀아요. 유리가 속삭였다. 여자는 힐긋 제 친구들을 바라보다 다시 유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곧 입이 열리고, 유리는 여자가 긍정의 답을 말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대답 대신 그의 팔이 덥썩 붙잡혔다.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그것도 상태가 아주 불량한.


  “내가 얼마나 찾아 다녔…….”


  유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돈을 더 가져오지 않으면 약을 주지 않겠노라 말했는데 그는 다시 유리를 찾아왔다. 유리는 남자의 집안 사정을 알고 있었다. 약에 중독된 남편에게 맞다 못해 도망친 아내, 그리고 그녀와 함께 떠난 어린 아들. 홀로 남은 그는 집도 가구도 모두 팔아버리고 유리에게 모든 돈을 가져다 바쳤다. 더 이상은 돈도 없을 텐데. 약에 썩은 장기들은 팔지도 못 할 테고. 유리는 혀를 차고 그를 떼어내려다 옆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곤 표정을 바꿔 웃어보였다.


  “아저씨, 취하셨으면 들어가서 주무셔야죠.”

  “줘. 돈, 가져왔으니까, 줘.”


  남자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냈다. 하지만 약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유리는 바닥에 떨어진 그것들을 주워 그의 주머니에 다시 넣어주었다. 그리곤 몸을 숙여 그의 귀에 속삭였다. 잠시만요. 줄 테니까 가만히. 유리는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나랑 술 마실 생각 있으면 먼저 술집 가 있을래요? 먼저 마시고 있어도 되고. 난 이 아저씨 좀 경찰한테 데려다드리고 올게요. 많이 취하셨나봐요.”

  “……알았어요.”


  빨리 안 오면 집에 갈 거니까. 응, 얼른 갈게요. 유리는 여자에게 손을 흔들곤 남자를 부축해 그 자리를 떴다. 경찰, 경찰이라니. 유리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남자를 이끌고 향한 곳은 어둑한 골목 안이었다. 축제의 밝은 불빛 아래에선 그림자가 더 길게 졌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어, 유리는 약을 달라며 제 팔에 매달리는 남자를 뿌리쳤다. 날카로운 칼이 그의 심장에 꽂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었다.


  유리는 조심스레 칼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놀란 눈으로 제 가슴을 찌른 흉기를 바라보다 황급히 칼을 뽑아들었다. 피가 온 골목을 물들였고, 혈향이 비릿하게 피어올랐다. 무릎을 꿇고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 유리는 칼을 빼앗아 들었다. 아저씨, 이제 약은 필요 없죠? 하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그대로 바닥으로 넘어졌다.


  이크, 피를 밟았잖아. 유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신발 바닥을 흙에 문질러 닦았다. 가면서 슬리퍼라도 사서 갈아 신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자의 생각을 했다. 여자의 미래가 골목에 쓰러진 남자처럼 될지언정 저는 상관없었다. 저는 그저 새로운 길을 보여줄 뿐이니까. 그 길을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는, 그녀에게 달린 문제였다. 돈, 가족, 그녀에겐 소중한 것들. 모두 잃고 나서야 그녀는 후회할 것이다.


  유리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