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 Hayden

꽃밭에서 (with 리안)

cha1 2014. 8. 24. 11:04


  “부함장님.”


  진이 고개를 들자 리안이 있었다. 얼굴이 익숙지 않아 진은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리안 홀트 중위. 아니, 대위였나? 진은 힐긋 그의 옷에 달린 계급장을 바라보았다. 대위구나. 그러고 보니 지난 주 진급 명단에서 본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이 없어서 그랬다기 보단, 잘 모르는 사이라 기억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이거, 함장님이 전해드리라고 하셔서요.”

  “아, 고마워.”


  진은 리안이 내미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진은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앞에 누가 있음에도 개의치 않은 것은, 중요한 서류였다면 이렇게 다른 이의 편에 전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별로 길지 않은 내용의 서류를 다 읽고 다시 봉투에 집어넣는 동안 리안은 가만히 그의 앞에 서있었다. 진작 갔을 거라 생각했던 진은 제 앞에 서있는 남자의 모습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전할 말이라도 있어?”

  “아뇨, 가라고 안 하셨으니까요.”

  “음, 딱히 그런 거 신경 쓸 필요는 없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리안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지만 진은 괜히 그것이 신경 쓰였다. 아마도 자신이 그를 모르는 만큼 그 또한 자신을 몰라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어차피 계속 얼굴 볼 사인데, 조금이라도 친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모리슨 소령님이 말해주셨어요.”

  “아아.”


  리안이 진을 찾아 들어온 곳은 식물들을 기르고 있는 인공 재배실이었다. 연구를 위한 여러 가지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인공 재배실의 한 구석에는 진이 기르고 있는 꽃들이 있었다. 카엘룸에 올라탈 때 옮겨 심어뒀던 꽃들은 시드는 일 없이 잘 자라나고 있었다. 애초에 까다로운 것들을 들여놓지 않기도 했지만 진이 틈틈이 돌봐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꽃이 참 많네요.”

  “꽃 좋아해?”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요.”


  예쁘네요, 그래도. 리안의 중얼거림에 진은 밝게 웃었다. 사실 진은 그 무엇보다도 꽃을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꽃에게는 그것이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예쁜 걸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니까.


  “생각 있으면 화분에 하나 담아줄까? 방에 가져다둘래?”


  불쑥, 묻고 나니 너무 갑작스런 제안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번 꺼낸 말을 무를 순 없어서 진은 잠자코 리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싫으면 거절하겠지, 뭐. 진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리안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진에게 물었다.


  “주시면 감사히 받겠지만, 제가 화분을 잘 못 돌봐서요. 주셔도 금방 죽일 것 같은데.”

  “그럼 손 많이 안 가는 걸로?”


  진의 제안에 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주시면 감사하구요. 진은 그럼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선 제 앞의 화단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대부분이 관리하는데 까다롭지 않은 꽃들이었기에 리안에게 아무거나 고르라고 해도 되었지만 제가 주겠다고 한 이상 직접 골라주고 싶었다.


  가만히 꽃들을 살피던 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리안의 머리색과 같은 붉은 색의 꽃이었다. 진은 화단 옆에 쌓인 화분 중 하나를 꺼내 꽃을 옮겨심기 시작했다.


  “베고니아야. 흙 마르면 대충 젖을 정도로만 물주면 돼. 내가 가끔 얼굴 보면 얘기해줄 테니까 까먹는 거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 네. 감사합니다.”


  리안은 가만히 서서 진이 움직이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꽃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옮겨 심고 손에 묻은 흙을 옆에 있는 수건에 문질러 닦았다. 그는 조심스레 화분을 들어 리안에게 안겨주었다. 물 받침대도 챙겨주는 걸 잊지 않았다.


  “뭐, 상태가 이상하다거나 그러면 나 불러도 되고.”

  “네.”

  “공기 정화 효과도 있다니까, 잘 키워봐.”


  그럼 나갈까? 진은 그렇게 말하며 재배실의 온도와 습도, 빛의 세기를 조정하는 계기판을 만졌다. 위이잉, 소리와 함께 방 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리고 진과 리안은 함께 인공 재배실을 떠나며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안의 손에 들린 붉은 빛의 꽃잎이 살랑살랑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