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 (with 샤론)
*마피아 패러렐 이벤트 로그
진은 식당에 앉아 기지개를 폈다. 오랜만에 움직여서인지 온몸이 삐그덕대는 것 같았다. 나도 나이 들었나보네. 어젯밤의 전투를 떠올리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걷어차인 다리가 아픈 것도 같았다.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는 걸로 보답하긴 했다만. 그는 메뉴판을 펼친 채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이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샤론은 진의 앞에 놓인 메뉴판을 가져가 보고 있었다.
“이런데서 자면 지갑 도둑맞는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내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있는 지갑을 가져가는데 안 깨겠어?”
“메뉴판 가져갔는데 몰랐잖아.”
“그건 너라서 그런 거고.”
샤론은 진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뭐 먹을래? 샤론의 물음에 진은 아까 보았던 메뉴 중 하나를 답했다. 그녀는 익숙하게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하곤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어제 잘 못 잤나봐?”
“그럼 잘 잤겠어? 그렇게 당했는데.”
진의 투덜거림에 샤론은 키득대며 웃었다. 가벼운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아니라면 쉽게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이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패배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상대가 샤론이라서 였다.
“니가 나왔을 줄은 몰랐지.”
“나도 나까지 끌려 나갈 줄은 몰랐어.”
어젯밤, 흑염룡과 화이트 S. 스타는 한 구역을 놓고 싸움을 벌였다. 위치상 그다지 중요한 거점은 아니었으나 시비가 붙은 이상 피해갈 수는 없었다. 화이트 S. 스타의 급습으로 시작된 전투는 간부인 진까지 끌어들였으나 흑염룡의 패배로 끝났다. 애초에 난 전투원도 아니고, 샤론 니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어. 진의 말에 샤론은 ‘역시 그렇지?’ 하고 답하며 웃어보였다.
“그나저나 어제 넘어지는 거 봤는데, 괜찮아?”
“어? 어. 뭐, 가볍게 멍이 든 정도야.”
“그럴 땐 무작정 덤빌 게 아니라 몸을 뒤로 빼는 편이 낫지 않았겠어? 넌 총을 더 잘 쓰잖아.”
“그럴걸 그랬지.”
그 순간 주문한 음식이 도착해 샤론과 진은 입을 닫았다. 웃는 얼굴로 마주 앉아 한다는 말이 조직 간의 싸움 이야기라니. 아주 비밀로 숨기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나 마피아예요, 하고 동네방네 광고를 하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오늘은 적 조직의 간부인 샤론을 만나러 온 게 아니니까. 진은 그저 소꿉친구인 샤론과 식사를 하기로 했을 뿐이었다. 어제 싸움이 있었던 것도 예상 밖의 일이었고.
식사는 평화롭게 이어졌다. 화이트 S. 스타의 수석 전투원인 사람답게 샤론은 진에게 이것저것 움직임에 대해 조언해주었다. 가만히 듣던 진이 적 조직원한테 이렇게 잘 해줘도 되는 거냐고 묻자 샤론은 니가 지금은 적 조직원이 아니라 친구니까 괜찮다고 말하며 웃었다. 밥은 맛있었고, 이야기는 즐거웠다. 비록 어제는 적으로 싸웠다지만 그 정도의 싸움으로 그들의 관계가 망가지는 일은 없었다.
“잘 먹었어. 여기 괜찮네.”
“커피는 니가 사.”
예에, 알겠습니다. 샤론은 그렇게 말하며 식당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페리도트 빛 머리가 바람에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진은, 그의 시선 끝에 닿은 흰 붕대를 바라보며 천천히 샤론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주머니에서 꺼내어 건넨 것은, 칼에 베인 상처에 잘 듣는 약이었다. 샤론은 이게 뭐냐는 듯한 눈빛으로 약과 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제 다쳤잖아. 분명 또 대충 붕대만 감고 말았을 거 잘 아니까, 집에 가서 발라.”
“오, 고마워.”
역시 의사 친구가 있다는 건 좋네. 샤론은 그렇게 말하며 진의 손에서 약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자그마한 약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진에게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청했다. 나란히 서서 사이좋게 길을 걷는 진과 샤론을 보며 서로 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햇살 아래서의 둘은, 그냥 평범한 친구일 뿐이었다.